“도대체 내 PC는 왜 또 버벅대는 거야?” 김 대리는 오늘도 짜증이다. 심드렁한 주변 동료들의 반응, “껐다 켜!”. 작업하던 것 다 날아가겠다며 투덜투덜 컴퓨터를 끄려는 찰나, 친절한 박 과장이 다가와 묻는다. “자네, 윈도 뭐 쓰는데?” “글쎄요? 뭐였더라? 98인가, 2001인가?”
일반적으로 하루 9시간 이상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직장인들. 목도 뻐근하고 배도 더부룩한데 컴퓨터까지 버벅거리면 솟구치는 짜증은 상상 초월! 그러면서도 정작, 어떤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를 쓰냐는 질문앞에서 눈망울에 물음표만 반짝이는 주인(?)들이 많다. 매일같이 부팅과 함께 움직이는 내 PC의 운영체제, 계속 무관심해도 될까?
한국의 개인용 컴퓨터(PC)는 99%가 윈도(Windows)를 운영체계로 사용한다. 왜 윈도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한 가지. “아무 이유 없어!” 그냥 깔려 있으니 쓴단다.
일단 윈도를 훑어보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윈도98’의 한국판은 1998년 8월11일에 나왔다. ‘인터넷 익스플로어4’가 기본 장착돼 인터넷 기능이 강화된, 당시로서는 ‘오 마이 히어로오~’ 같은 운영체제였지만 지금은 MS조차 취약점 보안패치 배포를 중단한 ‘버림받은 자식’이다. 취약점을 노린 위협에 무방비 상태인 셈. 2000년 2월에 ‘윈도2000’이, 7개월 뒤엔 ‘밀레니엄 에디션’(새천년판)이란 거창한 의미의 ‘윈도ME’가 나왔다. 가정용으로 개발된 ‘ME’는 훗날 안정성 면에서 최악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바로 다음해, ‘ME’와 ‘2000’을 하나로 통합한 ‘윈도XP’가 등장했다. ‘경험’(experience)을 뜻하는 ‘XP’란 이름값을 하며 가장 대중적인 운영체제로 부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1월31일, 그 ‘말 많고 탈 많은’ 윈도 비스타가 등장했다.
99%의 PC를 꽉 잡고 있을 윈도의 범위는 대충 이렇다. 이제 남은 문제는 ‘내가 왜 윈도를 쓰고 있느냐’이다. 앞서 ‘깔려 있으니까’라는 설명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는 ‘정보기술(IT) 강국’에 올라서기까지 MS라는 일개 회사의 상품인 ‘윈도’를 공급자 중심으로 일괄 선택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중국과 일본의 리눅스 사용자가 일년새 각각 34%와 37% 늘어나고 중국의 경우엔 자체 OS 개발까지 한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결국 보안 기능이 강화돼 깐깐해진 ‘비스타’ 버전이 출시되면서 벌써 한 달이 넘게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더 심각한 건 정부와 기업들. 맥OS나 공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 등 다른 운영체제는 싹 무시하고 윈도에서만 구현되게 돼 있던 전자정부의 경우, 윈도가 버전 하나가 바꿨을 뿐인데 온라인 민원 서류 발급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등 당황스런 상황을 맞았다.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게임에 손쉽게 MS의 ‘엑티브X’ 방식(일반 응용프로그램과 웹을 연결시키기 위해 제공되는 기술)을 사용했던 금융사와 게임회사들도 비스타에선 도로 이 방식을 차단하자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느라 야단이다. 한 국가의 PC들을 뼈속까지 한 기업에 맡겨버린 ‘호의’의 대가다. 오늘도 버벅거리는 김 대리여, 정부여, 기업이여 “PC 운영체제 뭐 쓰십니까?”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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